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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 중에 유명한 사람
이천이
2011. 3. 31. 17:38
천만리(萬里)의 후손으로서 조선 후기에 문 ·무과에 나아가 관계에 진출한 사람이 적지 않다.
첫째아들 천상은 뒤에 한성부 좌윤(左尹)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部都摠官)을 지냈고,
둘째인 천희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냈다.
문과 급제자로는 철종 때의 천일성(馹成), 고종 때의 천광록(光祿)이 있고, 천위영(緯永)은 고종 때
성리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무신으로는 영조 때의 천세필(世弼), 헌종 때의 천우대(禹大), 고종 때의 천상하(象河) 등이 있다.
천수경(壽慶)은 순조 때의 시인으로 옥류천(玉流泉) 근처의 소나무 바위[松石] 아래 초당을 짓고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는 시동인(詩同人) 모임을 만들었는데,
당시 시인으로서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격이 떨어진다고 여길 만큼 유명하였다.
한말 이강년(李康秊)의 좌익장으로 활약한 천보락(普洛),고종 때 외부주사를 지내고,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독립운동을 벌이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한 천세헌(世憲),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우규(姜宇奎) 등과 노인단(老人團)을 조직하여 활약한
천수점(手漸), 6 ·10만세운동과 일제 말기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른 성결교 목사
천세광(世光) 등이 있다.
국정원장을 지내고 현 국회의원인 천용택, 국회의원 천정배 등이 있다.
화가 천경자, 시인 천상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