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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 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

이천이 2011. 3. 31. 17:27

몇몇 분들이 우리 성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적을까 합니다.

또한 우리 성에 대해 인터넷의 자료를 찾아봐도 없는 중요한 사실들을 여기에 적을까 합니다.
우리의 중시조이신 천만리 장군님은, 국가에 대한 忠이 깊으신 분이십니다.

그에 대한 예로 1571년 무과(武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고 총절사가 되어 북방의 몽고 5부병을

섬멸시킨 공으로 내진무사가 되었으나,

간사한 자들의 무고를 받아 8년간이 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뒤에 풀려나 태청전수위사겸 총독오군수 (궁전 경비 및 전군총사령관)으로 승진되었습니다.

그러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총수사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 출병하여 공을 세운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일겁니다..
그러한 공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성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이 흠을 잡는가?

거기에 대하여 자세한 내막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에 의하면, 천만리 장군께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중국 황제가 3대에 걸쳐

벼슬자리를 주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바로 그거때문에, 우리 성보고 상놈이라고 한거라고 말씁하셨습니다

(그리고 꼭 덧붙인 말씀이 있으셨죠, 우리 성보고 그렇게 말한 놈들 데리고 오라고.

그 놈들은 무식한 놈들이고,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죠,

아마 그 놈들이 상놈일거다,,ㅋㅋ)

그렇다면 이제 제가 할아버지의 말들과, 여러 문헌들을 참조하여 거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까 합니다,.,
명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이 끝난뒤, 아주 국력이 약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있다가, 청나라에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비운에 시달리게되죠,

그 전에는 조선을 침략하여 신하의 나라로 만들었고요,,

(남한산성에서 우리나라의 임금이 청나라의 왕에게 무릎 끊었던 사건은 다 아실겁니다.)

그 뒤 우리 집안은 퇴행의 길을 걷게 된겁니다.

즉, 청나라가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만들고 명나라를 망하게 한 뒤에,,

청나라 황제가,

조선에 있는 명나라 장수들은 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천씨들은 명나라에 대한 忠으로 인해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노해서, 청나라 황제가 3대에 걸쳐 벼슬 자리를 주지 말라고 조선의 임금에게 명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뒤에, 청나라의 힘이 어느 정도 약해져서, 우리나라에 대한 간섭이 뜸할때(이건 저의 생각입니다.)

조선 숙종때 명나라 황제를 추모 하기 위해 궁중에 대보단을 설치하고,

화산군 천만리(千萬里)도 함께 향사하도록 했으며 순종때는 가헌의 뜻이 담긴 충(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던거 갔습니다.
그럼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셨는지요, 혹시 저의 이해에 대하여 오류가 있다거나,

문제점이 있으시면 지적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p.s. 우리 집안은 忠과孝과 강한 집안입니다. 5대 효자비 있는거는 다 아시죠??,

아무튼, 이렇게 충이 강한 집안이라는 사실을 조선 말기 유학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유림들이 저희 집안을 위해 사원도 지워주고 그랬답니다.
아마 저희 할아버지 말이 맞을 겁니다. 집안이 괜찮은 사람들은 저희 집안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건 그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 놈들이 상놈이라고 말한 것일수도있죠,,
할아버지는 그러면서 말한게 있었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기쯤에 노비들이 성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김씨나, 이씨, 박씨로 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김, 이, 박 중에는 정말로 뿌리가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나라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성이, 다 양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여기에 대해 할말도 많지만서도,,)그렇지만, 우리 성은 정말 확실하지 않습니까??

조선중기때, 천만리장군님이 어떤 위치였는지도 확실하고,,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게 있죠, 김, 이, 박들은 불투명하지만,,
우리는 확실하다고,, 한때 몰락의 위기에 놓인적은 있지만, 그것 역시
그냥, 몇 대 이상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거 뿐이라고,,,
(이것은 옛날 남산골 샌님처럼, 몰락한 양반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조선 후기 양반의 수는 늘어나고 관직은 제한되어지고, 당쟁이 심화되었죠,

그 좁은 관직을 차지하기 위해 말이죠,, 그러다보니,, 거기에 져서,

관직을 몇대째 못갖게 된 가난한 몰락양반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엄연히 그들도 우리와 같이 적용된다면 상놈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우리집안만 그렇게 불린거 보면, 우리 집안이 대단했나 봅니다..

후후, 아무래도 청나라에서 그렇게 명했으니,,,)

아무튼 중요한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니까 현재 우리가 우리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이 중요한거죠,,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보여드린건, 우리가 자부심을 느껴도 되기 때문이죠,

높은 자리에있으면 모합니까??

우리 조상이 충과 효를위해 희생한 것만 보아도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