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군대 기피 하는일 없기를...

이천이 2011. 1. 25. 07:27

군대 기피 하는일 없기를...ㅡ 수필가 최연성 칼럼

 

오늘처럼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50년전 강원도 철원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시 추위와

(보통 영하 20도안밖) 싸우면서 제설작업 보초서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생각이 난다.

 

필자는 전북임실운암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유학을 하여

전주고등하교 졸업시까지 전주에서 하숙을 하면서 오로지 공부에만 영중하였다.

 

고교졸업후에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체중미달(45K)이었으나 갑종 합격을 때려 그 이듬해인 62년

4월28일에  논산훈련소 30연대에서 6주간 혹독한 신병교육을 받았다

 

그후  의정부 101충대를 거쳐 한밤중에 한번도 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철원 문혜리에 있는

5군단 독립 포대에 배치되어 포병으로 군대생활을 시작했다.

 

그당시 만해도 체중미달인데도 보충역이 없었기에  현역 판정을 내렸는 것 같으며  군대에 안가면

사회에서 매장이되어 기피자로 죽는 줄만 알았다.

 

제대후 S구청 병사계에서 몇년간 병사업무를 보았는데 무단 탈영병,부정 병종합격,부정 보충역편입등

많은 병무부조리를 직접 보아왔다. 벼경,돈등이 좌지우지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군대막사는 세면벽돌 간이막사였으며 주로 나무를 해다 불을 펴고 주야간 지냈으며 눈이 많이 내려

겨울철에는 닭털침낭으로 그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못잘 그런 시설들이 전부였다.

 

본인은 체격이 적어 그렇게 밥이나 음식을 많이 먹는 축에 들지 못하였으나 따갈이에 주는밥이

너무 적어 배가 잠자기전까지 고플때가 많았다. 군수품, 군부식 부조리가 창궐할 때이다.

 

부대앞에 있는 한탄강 지류 냇가에서 겨울철에도 고참들 의복,양말등을 세탁을 했는데 같은 동기생인

고향 동기가 "이제 휴가가면 탈영하자"는 제의까지 하길레 그렇게 하자고 약속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고향까지는 말할것도 없고 서울까지 휴가나 외출을 나오는데 헌병검문소가 의정부 경계 도봉동까지

10군데가 더 되어 검문검색도 많이 받았다.흰 바가지만 보아도 무서울 때이고 피하고 싶었다.

 

이병에서 일병,상병,병장을 달고 보니 군대생활도 그런대로 익숙해지고 졸병설움도 없어지니

한가하고 어는덧 33개월이 지나 64년 12월 18일  제대 날자가 닥아와 무사히 만기제대를 했다.

 

고향 동기생들이 전부 호남 농촌 출신이라서인지 훈련도 제일 받기 힘든 곳에서 받았으며 군대생활도

거의가 전방부대에서 군대생활을 했기때문에 속으로는 호남에서 태어난 것 돈 배경없는 것 원망도 많았다.

 

또 그당시 훈련소에서부터 부대내까지 구타도 많았고 잠자리,식사가 변변치 못했으나 국민의 의무로

군생활을 마쳐 공무원 시험에서도 가점을 받아 서울시청 같은 수도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언론이나 신문지상을 보면 일부 고위층 자제,재벌이나 연예인들중 군대를 기피 할 목적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고 병역면탈을 일삼는 사례들을 간혹  볼 수 있어 참으로 안타갑고 우려스럽다.

 

요근래 미국,중국도 다 제나라 이익 챙기기에 바쁘고 북괴는 천안함폭침 연평도 도발등을 일삼고 있

는데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지 누구를 믿고 의지하고 가만이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나라도 외국 선진국처럼 군대를 다녀와야 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등 고위직에 종사 할수

있고 또 군대가점제도도 부활 하여 군대 갔다온 사람들이 대우 받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것이다.

 

칼럼니스트, 수필가 최 연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