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법대생들이 그렇게 좋아했던가 몰라요
고시공부 하는 놈들이 공부는 않고 쫓아다니기만 했으니
아내의 회고담이 또 시작된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투다
'법대생'이라는 말도 내 비위에 거슬린다
지금쯤 잘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떵떵거리며 지내지 않겠는가
(하기사 못 된 놈은 복덕방에서 어정거리고 있겠지만)
키는 180도 넘은 멀대같은 놈들이 늘 따라다녔단 말이요
키가 180이라는 말에 또 야코가 죽는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대꾸도 않고 숟가락질만 해댄다
수십 번을 들은 얘기이므로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미련이 있는지
오늘도 점심을 먹다말고 어떤 친구 얘기 끝에
그녀는 자신의 황금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대문 밖에까지 따라와서 어정거리니 어쩌겄오?
다음엔 삼촌이 나와서 쫓아보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 다음엔 장인이 법대학장에게 전화를 해서
그놈을 혼내 주었다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맨 끝에 있다
아니, 그 멀대같은 놈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충장로를 헤매고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었다쟎아요
말하자면 그 법대생이 상사병이 들어 실성했다는 얘기다
자신은 한 사내를 미치게 할 만큼 매력덩이였다는 메시지다
그 얘기를 한평생 반복해서 중얼거린 까닭은 무엇인가?
고희에 올라선 저 노파 맺힌 한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만약 세월을 다시 거슬러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마도 아내는 180의 법대를 선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나 좀 가져 와!
아내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수저를 놓는다.
;시학, 2012
그림 : Jesus De Perc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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