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 진실 파악)))) 이건희가 일본 혈통
(((( 진실 파악)))) 이건희가 일본 혈통
이건희의 어머니가 둘이라고 한다.
이건희의 친어머니가 일본인일까 아닐까?
어쨌든 일본인 어머니도 어머니이니 이건희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아래에서 보듯이 이건희는 이병철의 10명 자식 중에 일곱째이다.
그러니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나온 자식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진실은 무었일까?
이병철 부 이찬우[별세] 경남 의령, 차남 이병철을 와세다로 유학 보냄
1) 1녀 이인희(李仁熙) [ 생일 : 1928/12/20 ] 한솔그룹 고문
장서 조운해(趙雲海) [ 생일 : 1925/08/05 ] (전)고려의료재단 명예이사장
2) 1남 이맹희(李孟熙) [ 생일 : 1931/06/20 ] (전)제일비료 회장
장자부 손복남(孫福男) [ 생일 : 1933/04/05 ] CJ 고문
3) 2남 이창희(李昌熙) [ 생일 : 1933/05/24 ] [별세] (전) 새한미디어 회장
차자부 이영자(李榮子) [ 생일 : 1937/05/27 ] 본명(나케네 히로미)
4) 2녀 이숙희 [ 생일 : 1935/08/22 ]
차서 구자학(具滋學) [ 생일 : 1930/07/15 ] 아워홈 회장
5) 3녀 이순희
삼서 김규(金圭) [ 생일 : 1934/11/16 ] 서강대 영상대학원장 ,이혼
6) 4녀 이덕희 [ 생일 : 1940/11/28 ]
사서 이종기(李鍾基) [ 생일 : 1936/09/07 ] (전)삼성화재해상보험 회장
7) 3남 이건희(李健熙) [ 생일 : 1942/01/09 ] 삼성전자 회장
삼자부 홍라희(洪羅喜) [ 생일 : 1945/07/15 ] 삼성미술관장
8) 5녀 이명희(李明熙) [ 생일 : 1943/09/05 ] 신세계 회장
오서 정재은(鄭在恩) [ 생일 : 1939/03/15 ] 조선호텔 명예회장
9) 4남 이태휘 (전) CJ 상무 ,일본 거주
10) 6녀 이혜자 ,일본 거주
이병철 회장이 남긴 후손이 4남 6녀라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는 것도 극히 일부사람들만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그럼 정확히 몇째 아들, 딸부터 일본 부인에게서 난 자식인지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겁니다.
모든 것을 조작하고 진실을 바꿀수도 있는 힘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명박의 사돈인 효성그룹 창립자인 조홍재가 사업자금을 대고 이병철과
합자하여 삼성의 전신을 처음 설립해서 같이 경영하다가 효성으로 나누어 분리시켰다는 내용의 진실을
알리는 책들도 많았고 분리시킬때 이병철 회장이 너무 했다는 비난하는 내용의 책과 글도 많았었으나
지금은 어떤 글이나 어떤 책에도 이런 내용은 다 삭제되고 사전에 저지되어 실리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겁니다.(출판사와 언론에 이런 내용은 사전에 통보 받아 막고, 막지 못한 경우에는 이런 기사나 책이
나오면 이건희 직원을 시켜 전량 사들여 불태워 없앴던 경우도 있었음)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던 진실도 완전히 파묻고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진 황제입니다.
(이명박과 효성그룹 조회장, 이건희의 3자 관계는 이렇게 혈연과 지연{영남}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
이건희는 일본 여자의 자식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들 외에는 없겠지요.
그것도 이병철 회장과 부인들, 자식 중에서 첫째와 둘째 정도나 알까요 .
그러나 경남 의성의 고향의 노인들에게는 진실을 알아 볼수 있을 겁니다.
동네 노인들의 증언은 세상에서 족보세탁을 하고 은둔하여 사라진 이완용의 후손이 병자 돌림자를
썼기 때문에 이병철이 족보세탁하고 세상에서 사라진 이완용의 직접적인 후손이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겁니다. 노인들 마져 세상을 뜨고 나면 진실은 찾을 길이 없을
겁니다. ( 이건희가 두 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10명의 자식 중에 7째인 것으로 미루어 볼때
둘째 부인의 자식일 가능성은 극히 높다고 봅니다)
이병철 회장은 10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에 첫째 이맹희와 둘째 고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까지도
제외하고 그 당시 나이도 어렸던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했을까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부모가 정해준 첬째 부인보다는 일본에서 자기의 눈에 들어 사랑하게 된
일본인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고 그래서 그 자식에게 재벌총수의 자리에 앉힌 결과가 아닐까요.
이병철이 이건희를 후계로 세우자 이맹희씨는 세상과 담을 쌓고 은둔의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 이것이 자의인지 타의 인지는 정확히 모름)
그러나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사망하자 1993년 회상록을 출판하는데 이 책에 경악할 폭로를 합니다.
사카린사건과 밀수사건은 박정희와 이병철이 손잡고 벌인 정치자금 마련 사건이라는 겁니다.
이맹희씨의 경악할 폭로
http://blog.naver.com/liskangel/140012563990
이런 폭로를 한 이후에 다시 이맹희씨는 보통의 세상사람들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맹희씨의 근황 추적
http://www.sisafocus.co.kr/news/view.php?n=32303&p=1&s=2
이맹희씨가 민족주의자고 애국자의 기질이 강하다면 일본인 어머니가 한분 더 있는 이건희 일가에게는
가장 위험 인물로 세상에 내 놓아서는 안되는 사람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참으로 의아 했던 것은 이건희가 왜 경호에 그토록 철저히 신경을 쓰느냐는 것이다
이건희가 형들인 이맹희와 고 이창희 회장을 따돌리고 삼송의 회장으로 완벽히 등극하고 나서
항상 국내에서는 집의 지하실에 슈퍼 컴퓨터를 갖다 놓고 집무실로 만들어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으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또 특별히 외출할때는 수십명의
경호원을 거느리고 외출을 한다. 국외를 방문할때는 작은 호텔의 경우 통체로 빌려서 경호를 하고
대형 호텔의 경우 2개 층을 전부 빌려서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 다는 것이다.
이는 뭔가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인 것이다.
누구로 부터의 공격을 지켜내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일까?
이런 것을 바탕으로 진실을 깊이 있게 파고보면 경악할 진실이 드러날 것같습니다.
아고라 CSI팀을 가동해 진실 찾기에 나서면 어떠할지요?
이 진실로 인해 매국노들이 무너지고 우리의 투쟁이 한 순간에 승리로 종결지어 질수도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면 남한은 아직 일본인 후손에 점령당해 있는 일제 경제수탈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희가 헨드폰과 첨단 TV ( 부품의 100%를 일본제품으로 조달)등 부품을 값싼 대만
제품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고 일본에서 100% 전량 조달하는 경우까지 있는 경우를 보면
의혹의 증폭 되지 않을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병철은 생전에 연말연시와 연휴때는 대부분 일본으로 건너가서 명절과 연휴를 보냈다.
나는 한때 이병철의 조상이 일본인이라서 명절때 마다 일본으로가서 설을 보내나 보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당시 항간에는 신병 치료차 일본에가서 피를 전부 갈아 넣고 온다는 웃지 못할 소문도 파다 했었다.
또 재벌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가는 추세에서 유독 이병철은 아들인 이건희를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매국노 수괴 이건희가 줄기세포 특허상납을 한창 진행 중인 2006년에는
일본에 살고 있던 동포라는 여자가 한국에 들어와서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과 줄기세포 특허수호자들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엄청난 자금( 당시 알려진 것만 수백억)을 뿌리고 다녔다.
이때 돈벼락 맞은 지지자들, 운동권들이 엄청 많았다.
이 여자는 이병철, 이건희와는 어떤 관계일까?
----------------------------------- 펌 글 ----------------------------------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출생 1백년을 ‘기념’하는 지배자들의 ‘신화’ 만들기가 정말 낯뜨겁다. 대구에는 ‘호암 이병철 동상’이 세워졌고, <조선일보>는 “국민교과서”로 삼을 만한 이병철의 전기나 평전을 쓰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병철의 출생을 축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병철은 역대 독재 정권과 유착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재벌공화국’을 만드는 데 앞장선 부패하고 악독한 대자본가다.
이병철은 1910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고 식민지 치하 농민들의 시름에는 아랑곳 않고 땅 투기에 나서면서 엄청난 부자가 됐다. 1936년에 이병철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경상도의 곡창 지대인 마산에 설립한 협동정비소였는데, 그곳에는 굶주린 소작농 수백만 명의 희생을 대가로 일본에 수출할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가 친일파가 아니었으면 식민지 조선에서 부와 특권을 향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병철은 항상 자신을 ‘일본 신사’로 여겼고 일본 여성과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했다.”(브루스 커밍스, ≪한국현대사≫, 창비)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해방 후 이병철의 사업 자금은 일본인들이 남긴 재산인 ‘적산’과 미국의 원조 자금에서 나왔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해방 직후 분출하는 노동자 운동을 짓밟고 부패한 권력과 결탁한 이병철 같은 자본가들에게 ‘적산’을 불하했다. 이병철은 1951년에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했고, 한국전쟁 통에 물자부족과 물가앙등을 이용해 급속하게 부를 쌓았다.
이승만은 이병철에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같은 옛 일본 기업들을 거의 헐값에 넘겨줬을 뿐 아니라 1957년에는 정부가 보유한 은행 지분까지 삼성에 매각했다. 이런 특혜와 지원에 힘입어 삼성은 이미 1950년대 후반에 계열사를 열 세 곳이나 거느린 재벌로 성장했다. 이병철은 그 답례로 이승만에게 막대한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
그래서 1960년 4월 혁명이 터지자 성난 민중은 ‘부정축재자’ 이병철을 처단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5ㆍ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부정축재환수절차법을 공표해 이병철에게 면죄부를 줬고, 이병철은 이제 박정희 정권과 유착했다. 1966년 삼성과 박정희 정권이 막대한 검은 돈을 조성하고자 공모한 사카린 밀수 사건은 “장사꾼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얻는 기업가가 돼라”는 이병철의 ‘호암어록’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당시 서울대 학생들은 “민족의 피를 빤 이병철을 즉각 구속하고 민족적 대죄를 진 악덕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라”고 요구했다.
‘이병철 신화’의 상징인 삼성전자도 삼성과 박정희의 ‘특별한 관계’가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해 돈도 대고 공단도 만들어 줬다.
전두환 정권도 고속도로 건설, 차세대 전투기, 반도체, 율곡사업 등의 이권을 삼성에 넘겨줬고, 이병철은 여덟 차례에 걸쳐 무려 2백20억 원을 전두환 정권에 헌납했다. 이 자금은 독재정권을 유지하며 노동자와 학생 들을 탄압하는 비용으로 쓰였다.
이병철은 “국가에 봉사하는 게 기업인의 본분이자 의무”라고 했는데, 정말 그는 역대 독재정권에 충실히 봉사했다.
1987년 죽기 직전에도 이병철은 자산총액 11조 원인 그룹을 편법상속해 세금을 단돈 1백50억 원만 내고 이건희한테 넘겼다.
이병철은 “인재 제일, 인간 본위”라는 경영 철학을 내걸고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1950년대 제일제당 노동자들의 농성을 깡패들을 동원해 탄압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이병철이 직접 설계한 것이다. 이처럼 이병철의 ‘성공 신화’는 부정부패와 노동자 탄압으로 얼룩져 있다.
[이병철 출생 1백년] 독재 정권과 유착해 성장한 부패한 자본가
<레프트21>은 정보공유라이선스2.0:영리금지를 따릅니다.
드골의 매국노들과 언론인 처단법을 알리고 시행하자.
▲ 전후 프랑스의 나치 청산을 주도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처형법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 레 레트르 프랑세즈(주간지 프랑스문학)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 드골
나치 협력 민족반역자에 대한 재판은 특히 파리재판소가 거물급 유명 인사들을 거의 다루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파리에 집중됐다. 드골의 과거청산 작업은 히틀러가
항복하기 전에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나치전범을 심판한 뉘른베르그의 국제재판보다 시기적으로
2년 정도 앞서 열렸다.
드골이 주도하는 나치 협력 반역자 대숙청은 민족을 배반한 무리들을 모두 지배세력에서 뿌리
뽑았고 악질적이며 광적인 나치협력자들을 사형과 무기강제노동형에 처함으로써 다시는 지배세력
으로 군림할 수 없도록 영원히 매장해 버리는 데 성공한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파리의 숙청 재판정에 가장 먼저 끌려나온 피고들은 널리 알려진 나치 협력 언론인들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전쟁 전에 친 독일 언론인으로 낙인찍힌 부류들이고 파시즘을 찬양하며 나치즘을
확고한 자기신념으로 갖고 나치가 승승장구할 때 자연스럽게 선전역할을 담당해 미친 듯이 설친 자
들이다.
그런데 전쟁 전에 기회주의적으로 반 나치였다가 독일이 점령군이라는 강자로 등장하자 나치
독일의 선전원으로 전락한 ‘매춘 언론인’은 매우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드골이 언론인을 제일 먼저 민족반역자의 숙청 재판의 도마 위에 올린 것도 숙청 전략의 일환이었다.
드골 자신이 언론인을 제일 먼저 심판하는 이유에 대해 나중에 솔직히 술회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했다.”고 기록했다.
부역죄는 모든 숙청 재판에 반드시 병과되었는데, 부역죄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및 공직 진출권이
박탈되며, 공무원, 군, 변호사,회계사, 교원, 노동조합원, 언론인과 모든 통신과 정보 업무에서 추방되고
심지어는 개인기업의 사장은 물론이고 이사진에서도 제외된다.
특히 부역죄는 국적 박탈의 형벌이 자동적으로 병과된다고 규정해 드골이 나치 협력 반역자 숙청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완전히 정화해 애국 시민만으로 재조직하려한 정치적 비전을 실현하려 한 것으로
주목되는 대목이다.
대숙청 후 프랑스 사회가 급속도로 민주화되고 도덕성과 윤리 및 민주적 법질서가 잡힌 것은 나치
협력 민족반역자들을 채로 모두 걸러내듯 부역자들까지도 응징한 것의 결과라는 평가이다.
드골은 파리 해방 직후 파리 숙청재판소에서 나치 협력 언론인을 제일 먼저 민족반역자의
심판대에 올림으로써 반역자 대숙청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간단하게 잠재웠다.
......
프랑스 대숙청을 처음 학문적으로 연구한 로베르 아롱은 44~45년 나치협력 혐의로 의심받거나
처벌된 사람이 50만명, 구속된 사람이 15만명, 사망자는 3만~4만명이라고 추산했다. 그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200만~300만명, 즉 총인구의 3~5%가 나치협력의 죄값으로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주섭일, ‘프랑스의 대숙청’에서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현재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잃은 것도, 민주주의 후퇴와 파괴,
이완용에 이어 매국노 이명박과 매국부역자들의 매국질의 재발도
모두 일제잔채청산과 군부독재에 부역한 자들의 청산을 못한 결과 입니다.
다시 역사의 단죄를 못해 우리의 아들, 딸들까지 대를 이어서 고통받고,
통곡하는 비극을 물려 줄수는 없습니다
줄기세포 특허상납 ( 진실은 '국민의 소리' 검색 요청),
핵융합로 기술특허 상납( 아고라 '50대 선인' 글 검색)을 진행하고 있는
매국노 이명박과 매국노들의 수괴 이건희와 매국하수인들에게 부역하는
자들에 우리의 결의와 다짐을 보여주고 매국질을 막고 반성하고 양심선언하게
만들기 위해 즉석 여론조사를 하겠습니다
줄기세포 특허에 대한 진실은 '국민의 소리'에서만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줄기세포 특허와 핵융합로 특허상납 작업을 진행 중인 매국노 수괴
이건희의 돈에 거의 다 매수된 상태로 정확한 진실을 알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민의 소리 : http://www.peoplevoice.co.kr/
핵융합로 기술이란? 핵융합로 특허의 현재 상태
매국노와 매국부역자들에게 사회적 매장까지 포함한
드골식 처벌을 해야한다에 찬성하시면 찬성을 눌러주시고,
적당히 처벌해도 된다에 반대하시면 반대를 눌러 의사표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이명박의 방송,언론인 동원 만행에 부역한 자들도 처벌해야 됩니다.
몇일 전 이명박의 KBS 김인규 사장 임명과 관치에 대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많은 직원들이
반대를 한것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심어 놓은 자들 수백명이 아직까지도 KBS에
살아 남아 재직하고 있다가 이명박 정권들어서고 나서 요직에 다시 앉혀져 있기 때문에
일어난 친일파, 독재잔재 세력의 반란 이었습니다.
아래는 이 글들만 읽어도 현재의 정국상황과 이명박의 매국질 등등
거의 전만적인 국내외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글만 엄선했습니다.
꼭 읽고 많이 전파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게 된 특급비밀
4대강, 세종시 수정 추진하는 진짜 이유는 극비
이명박 정권 또 대형사기 쳤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881811&hisBbsId=best&pageIndex=3&sortKey=&limitDate=-30&lastLimitDate=
한민족은 500만 해외동포까지 멸족이다.
여러분은 지금 이런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명박, 최시중, 조용기, 정몽준의 극비 관계
이럴수가 있나 ----아직도 대한민국은 일제의 탄압시대에 머물러 있다
자유토론방 ----인터넷에 북한, 좌파, 빨갱이, 지역감정 이용해 글쓴 딴나라 지지자들 큰일났다
과거 글을 포함한 저의 모든 글은 언제든지
무한 링크 무한 펌이 하용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는 일이 이 나라를 구하고
우리,아들,딸들의미래를지키는일이됩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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