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막사이사이. Ramon F. Magsaysay (국민당, 1953년 1월 ~ 1957년 3월)
대통령 임기 중 막사이사이는 그의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로, 다리, 및 건물 등이 자신의 이름을 따라 호명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필리핀에 민주화를 토착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공산주의단체를 섬멸하였고 민주주의를 보전하여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된다.
막사이상이의 정책은 또한 서민과 빈곤자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래서 빈민가에 사는 빈민들은 그를 "진정한 사나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는 바랑가이(우리나라의 동에 해당.)의 환경을 개선하였다.
예를 들어, 빈민가 및 낙후한 지방에 공동 우물을 설치하여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이용하게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우물을 "막사이사이 우물"이라 부른다
레이먼 막사이사이가 깨끗한 정치를 펼치다 1957년 3월 17일 비행기 사고로 세부 근처에서 숨졌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 성공적인 반게릴라 작전을 수행해 유명해졌으며 195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농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귀순자에게 토지와 농기구를 마련해주고 군대를 개혁하여 부패한 장교들을 해임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록펠러재단이 공여한 기금으로 막사이사이상이 제정됐다.
이 상은 매년 공공사업, 사회공익에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국제적인 상으로 우리나라 수상자로는
장준하, 김활란, 장기려 등이 있다.
레이먼 막사이사이 상에 대하여
주최 : 레이먼 막사이사이 재단
개최원년 :1958년
개최장소 : 필리핀
시상내역 : 평화/국제이해관계, 정부관계, 공공사업, 지역사회지도,
언론문화와 청년 지도자 부문 (2001년부터 신설) 총 6개 부문.
역대 한국인 수상자들로는 아래와 같다.
1962년 장준하(張俊河) 언론/문화
1963년 김활란(金活蘭) 공공서비스
1966년 김용기(金容基) 공공서비스
1969년 김형서 공공서비스
1975년 이태영(李兌榮) 지역지도자
1978년 윤석중(尹石重) 언론/문화
1979년 장기려 공공서비스
1980년 엄대섭 공공서비스
1981년 강정렬 국제이해(신협)
1986년 제정구(諸廷坵)·정일우 공동수상 지역지도자
1989년 김임순(金責順,한국ㆍ애광원 원장) 지역지도자
1996년 오옹진(吳雄鎭) 공공서비스
2002년 법 륜(法輪, 한국ㆍ정토회 지도 법사) 평화와 국제이해부문
THE RAMON NAGSAYSAY AWARD(레이먼 막사이사이상)
레이먼 막사이사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필리핀 공화국의 세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의 삶은 필리핀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그 당시의 훌륭한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레이먼 막사이사이는 그의 평범한 출신 배경과 겸손함 때문에, 그는 각 개인 한사람 한사람으로서
모든 국민들을 돌보았으며 그들의 존엄성과 중요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신념에 대한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의 삶의 목표는 사랑하는 필리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었으며 그는 개인적
욕심을 버리고 그 일을 해나갔다.
그는 정부가 지속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실해야 하고 국민들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레이먼 막사이사이는 인류는 자유와 행복 속에서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았다.
그는 상위법(high principle 7)의 불공평과 폭력성에 분노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존중과 평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나라를-세계를-건설하기 위해 일했다.
그는 기리기 위하여, 레이먼 막사이사이상은 그가 그리는 이상과 봉사의 좋은 예가 된
아시아의 개인이나 조직 단체를 찾고 있다.
이 상은, 존 D. 록펠러 3세(John D. Rockfeller)가 카를로스 P. 가르시아(Carlos P. Garcia)대통령에게
1957년 4월 30일에 보낸 편지에서 발의된 것이다.
이 때는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3월 17일에 비행기 사고로 숨진지 6주가 지났을 때였다.
“내 형제들과 나는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삶과 업적을 깊이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행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we believe deeply in that for which he stood).
록펙러 형제들의 기금을 보관하고 있던 수탁인들은 전대통령(막사이사이)을 위한 살아있는
기념행사를 설립하는데 참여하는 것을 개인적인 명예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내게 매년 레이먼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삶에 상응할만큼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실증되는
지도력을 발휘한 아시아에 있는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들에게 레이먼 막사이사이 상을
수여하자는 계획을 제안하였으며 그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록펠러 형제 기금(RBF)과 필리핀 공화국 정부사이의 정식 협정을 제정하면서,
가르시아 대통령은 이 전임자(막사이사이대통령)에게 “찬사를 받을만하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모든 알려진 기준에 의해서,
나는 레이먼 막사이사이의 정신이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에 반드시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의 일생에서 그는 최초의 자유옹호자 중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의 필리핀 시민들에게 자기자신의 그 자신의 권리와 양심의 유일한 수호자가 될 것을 가르쳤고,
자신이 학대받을 때 방어할 것을 가르쳤고, 실제로 정부기관이 행하는 공무에서 그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일께웠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던 필리핀 일반 사람들의 존엄성을 새롭고 신선하게 다시 일깨워서
감화시킨 것이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레이먼 막사이사이 상이 그에 대한 기억을 영원토록 지속케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유망한 사람들이 이 상을 통하여 그의 가치있는 행동에 필적하도록 고무될 것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보증한다.”고 말했다.
1957년 5월에, 일곱명의 같은 생각을 가진 필리핀사람들이 레이먼 막사이사이상재단(RMAF)의
수탁인 설립국을 만들었다.
이 설립국은 필리핀공화국의 법률아래 구성된 민간 비영리단체로서 마닐라에 위치하고 있었다.
필리핀 공화국의 두 번째 대통령인 前 서지오 오스메나 대통령(Sergio Osmena Sr.)과
레이먼 막사이사이의 아버지인 돈 익스뀌엘 막사이사이(Don Exequiel Magsaysay)씨가
각각 명예 의장과 부의장으로서 추대되었다.
법무부 서기관 페드로 투아손(Pedro Tuason)이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필리핀 교육 저널”의 편집자이자 출판업자인 파즈 마께즈 베니테즈(Paz Marquez Benitez)가
부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변호사이자 기업가이며 대규모 도시 토지소유의 개발가인 프란시스코 오티거스 주니어
(Francisco Ortigas Jr.)가 재무를 담당하였다.
그밖에 필리핀 대학의 농과대학 학장인 레오폴드 B. 위산코(Leopiod B. Uichanco), 목재
특허권 소유자이며 레이먼 막사이사이의 가장 가까운 형제였던 지저스 막사이사이(Jesus Magsaysay),
前 농업부 차관이었던 제임 페레(Jaime Ferrer)가 참여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법적 자문을 맡았던 벨렌 H. 아브류(Belen H. Abreu)는 간부 수탁자로
촉임되었으며 이 프로그램의 全日 집행관으로 위탁받았다.
(1998년에 일곱 명으로 구성된 재단 위원회는 아홉 명의 위원회로 확대되었으며,
재단의 회장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간부 수탁자(executive trustee)"라는 명칭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수탁 위원회는
단독으로 수상자를 선정할 책임이 있었다.
1959년에, 필리핀 의회는, RBF의 본래 조성금의 가치에 거의 상응하는 정도의 토지를
막사이사이상을 지원할 수입을 산출할 수 있는 레이먼 막사이사이 센터를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이먼 막사이사이상은 아시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인종과 이념, 성별, 국적을 막론하고 열려있다.
아시아는 일본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뻗어있는 즉, 동부, 남동부, 남부 아시아까지 포함하는 구역을 말한다.
후보자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수탁위원회는 그들의 삶과 행동이 레이먼 막사이사이가 구현한
이상과 봉사정신을 그에 상응할 만큼 잘 보여주었는가의 여부만을 고려한다.
-‘국가 공무’ 부문: 행정부, 서법부, 입법부, 또는 국방부까지 포함하여 정부의 어떤 분야에서든지
공공의 이익에 대한 기릴만한 봉사활동을 표창하기 위해서이다.
-‘공공 봉사’ 부문: 시민으로서 현저한 봉사활동을 보여준 이를 표창하기 위해서이다.
-‘공동체 지도력’ 부문: 지역이나, 국가, 혹은 국제적인 공동체를 지도함에 있어서,
특히 그 구성원들이 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권리를 깊이 깨닫게 하는데 도움을 준
활동에 대하여 표창하기 위해서이다.
-‘언론과 문학’ 부문: 공공의 선을 위한 힘으로써, 효과적인 기고 활동과 출판활동을 한 것에 대한 표창이다.
-‘국제 화합’ 부문: 다른 나라 국민들간의 우호와 상호 이해관계의 증진에 대한 표창이다.
후보자들은 고위 관리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들의 활동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필요는 없다.
그들은 바로 남들 모르게 타인을 돕고,
어떤 대중적 인기를 기대하지 않고 사심없이 봉사한 개인이다.
의정서와 병참과 보증서에 의하여 RMAF 수탁위원회는 1970년에 어떤 지역의 장이나
그들의 배우자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추천서는 매년 9월달부터 그 다음해 1월 31일까지 받으며,
RMAF 절차규약에 의하여 아시아 전역에 있는 전도유망하고,
지위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의 후보자를 추천하게 되어있다.
상을 받을 만한 일이나 업적은 반드시 정해진 범주 내에서 신중한 조사에 의하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막사이사이상은 상장과,
선출의도를 나타내 주는 레이먼 막사이사이 초상이 새겨진 메달과,
50,000달러에 달하는 현금과 함께 전달된다. 한 분야에 수상자가 두 사람인 경우,
그들이 동등하다고 평가되는 경우에 상과 현금포상은 나누어 질 수 있다.
다만 ‘공동체 지도력’부문에서는 10명 이상이 표창 받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되어있다.
(An award and cash prize may be divided between two recipients considered equally deserving
in a given category, excepting Community Leadeship for which one or more person but
never more than ten may be cited)
오직 ‘국제 화합’부문에서만 단체가 표창받을 수 있다.
수탁위원회는 만약 그해에 적당한 후보자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 한 부문이나 혹은 몇 개 부문에서
수상을 생략할 수도 있다.
만약 수상자 선정 이후에 그 수상자가 죽게 된다면 사후 수상이 있을 수 있다.
매년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생일인 8월 31일에 마닐라에서 수여식이 개최된다.
첫 수상은 1958년에 있었다.
◆자료발췌:한필친선협회 http://www.philk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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